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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 소비자사업부문 CEO 리처드 유

기사승인 2019.01.03  17: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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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혁신의 주류 자신하다 ‘늑대 문화’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세계 정복을 꿈꾸고 있다. 화웨이는 1987년 직원 5명의 전화교환기 제조업체로 출발해 현재 170여 국가에 통신 인프라를 공급하는 매출 460억 달러(약 51조7천억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글로벌 스마트폰 점유율 3위의 제조사, 화웨이 
화웨이는 2016년 삼성, 애플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했다.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인 중국에서 삼성과 애플은 5위 밖으로 밀려났으며, 화웨이, 오포, 비보, 레노보, 샤오미 등 판매량 Top 5를 차지한 중국 현지 기업의 합산 점유율은 65%에 육박했고 특히 화웨이는 2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 다수가 이 기업의 하드웨어를 사용해 전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인구 6명 중 1명은 (이 회사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이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셈이다. 화웨이는 톰슨 로이터가 선정한 세계 100대 ‘혁신기업’이며, 인터브랜드가 선정하는 100대 ‘글로벌 브랜드’에 꼽히기도 했다. 창업자 런정페이는〈포춘>이 선정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 1위에 오르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화웨이가 처음부터 화려했던 것은 아니다. 창업한 그 순간부터 중국 통신 시장에 진출해 있는 지멘스, 에릭슨, 루슨트테크놀로지 등 쟁쟁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해야 했기에 번번이 파산 직전까지 몰리며 생존을 도모해야 했다. 자금도 기술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 15만 명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화웨이는 고비마다 모든 자원과 인력을 동원하는 늑대 정신으로 정면승부를 벌이며 한 걸음씩 전진해왔다.
세계 최대의 통신 장비 업체인 화웨이는, 늑대의 강한 끈기와 불굴의 도전의식, 공동체 의식, 민감한 후각 등을 본받자는 전략을 의미하는 ‘늑대 문화’란 기업 문화로 유명한데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은 팀플레이를 위해서 자신이 1.4%의 지분만 소유하고, 나머지 지분을 모두 임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이 같은 창업자의 모범에 화웨이 직원들이 접이식 군용침대를 책상 옆에 두고 밤잠을 설쳐가며 숙식을 해결했다는 일화는 중국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화웨이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막강한 기술력을 키우는데 매진해온 결과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3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화웨이가 이렇게 급성장한 것은 불과 몇 년 사이의 일이다. 중국이란 배경에 기대지 않고 철저하게 국제 기준을 따른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기업과 나라를 가리지 않고 좋은 제도나 시스템이 있으면 누구의 것이든 열린 태도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유럽 진출에 성공한 것이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최근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매년 20% 안팎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15만 화웨이 늑대군단의 창업자
화웨이의 창업주이자 정신적 지주인 런정페이 회장은 중국에선 드물게 민간 기업을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올린 인물이다. 그는 1944년 구이저우성 안순시에서 7남매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했지만 지식인들이었던 부모의 교육열 덕분에 런정페이는 1963년 서남부 지방의 명문으로 꼽히는 충칭건축 공정학원(현 충칭대학교 공대)에 입학했다. 어린 시절의 가난으로 고생했던 경험과 그런 상황 속에서도 배움을 강조했던 집안 환경이 런정페이로 하여금 지금의 화웨이를 만들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런정페이가 대학교 3학년 때 문화혁명이 일어나 모든 학교가 문을 닫는 사태가 벌어졌다. 런정페이는 학교가 문을 닫은 와중에도 스스로 컴퓨터, 디지털 기술, 자동제어 등 기술관련 분야를 독학했다. 
런정페이가 당시 익혔던 기술분야의 지식들은 그가 화웨이를 창업하는 바탕이 됐다. 런정페이는 졸업 뒤 1974년에 인민해방군에서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건축병으로 일했다. 인민해방군에서 일하면서 군사통신 시스템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통신과 관련된 일들을 배웠다. 런정페이는 이때 통신기술을 습득하고 그가 존경하는 인물인 마오쩌둥의 전술과 철학을 배웠다. 이때 경험은 화웨이를 글로벌기업으로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44세에 창업한 통신 시설 제조업
그는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감군계획으로 1983년 제대하고 선전 남해석유조달센터에서 4년간 근무했다. 그러나 시장경제와 관리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사직했다. 런정페이는 그 뒤 직장을 찾는 일이 쉽지 않자 1987년 단돈 2만1천 위안으로 화웨이를 창업했다. 화웨이는 처음에 통신장비 대리상으로 시작해 점차 전화교환기 등 통신설비 제조업체로 변신했다. 지금은 170여 개 국가에 통신 인프라를 공급하는 글로벌 업체로 성장했다. 런정페이는 농촌에서 혁명을 일으켜 도시로 포위해 들어간 마오쩌둥처럼 대형 경쟁업체들이 이미 장악하고 있는 대도시 대신 경쟁이 거의 없다시피 한 농촌 지역부터 공략하는 전략을 사용해 성공을 거뒀다. 
런정페이는 늑대군단이라 불리는 화웨이를 이끌고 있는데 화웨이만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들어냈다. 늑대군단이라는 말은 늑대처럼 항상 생존을 위해 본능적으로 사업환경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런정페이도 그렇게 화웨이를 키웠고 임직원들에게도 이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런정페이는 최근 들어 거북이 정신을 강조한다. 거북이처럼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가되 항상 머리를 들어 기회가 보이면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화웨이의 CEO인 런정페이 회장은 국제무대에 노출을 극히 꺼렸다. 최초의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는 2013년에 이르러서였다. 
런정페이 회장은 직원들에게 고객 중심의 가치관, 위기의식, 끊임없는 노력과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런정페이 회장은 “우리는 고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을 위해 노력해 고객들에게 돈을 받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에게 독특한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노력하고 앞장서서 노력하라는 옛 말씀들을 실천에 옮긴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해온 가치들이 화웨이의 기업문화가 되고 화웨이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학계에서 그를 중국에서 몇 안 되는 진정한 사업적 기질을 보유한 사업가로 본다. 모험가 정신을 가지고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지도자로 평가하는 것이다. 런정페이는 “성공은 일본기업들처럼 구사일생의 위기를 겪고 난 뒤에도 다시 잘 살아났을 때나 할 수 있는 말”이라며 “화웨이는 아직 성공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웨이가 자만에 빠지지 않고 위기의식을 가지고 노력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꾸준한 R&D 투자
화웨이는 자사의 성장 비결을 말할 때 ‘저렴한 가격’을 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격으로만 승부한다는 중국 기업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기술 개발 투자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래그십을 제외한 다른 라인업에서는 여전히 높은 가성비를 자랑한다. 중국에는 정말 다양한 스마트폰 업체가 있다. 노트북 계 일인자인 레노버도 있고, 충격적인 가격으로 한동안 인기였던 샤오미, VIVO, OPPO, ZTE, MEIZU…등 수 많은 업체가 있다. 하지만 이 회사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중국 자국 시장 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특허 문제와 큰 관련이 있다. 중국 정부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중국 시장 내라면 마음껏 활개 쳐도 되지만 소송의 나라 미국, 유럽, 아니 바로 옆 한국이나 일본으로만 나와도 특허 괴물들의 고소 공세를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화웨이 스마트폰이 빠른 시간 안에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도 뛰어난 자체 UI(이모션 UI)과 앱 덕분이다. 애플의 3D 터치도 스마트폰에서 최초로 적용한 회사는 화웨이다. 그렇다면 화웨이가 어떻게 세계 최대의 통신 장비 업체가 되었을까. 먼저 화웨이는 6개월에 한 번씩 CEO가 바뀐다. 
두 번째는 화웨이는 아직 상장하지 않았다. 샤오미, 에어비앤비, 우버처럼 비교적 최근에 생긴 기업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화웨이는 1987년 설립된 기업이므로 30년 가까이 된 기업으로는 이례적이다. 자금 조달은 회사를 부분적으로 떼어내거나 각각의 제품 생산라인만 매각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상장기업이 아니므로 의사결정 과정이 간단하고 기회가 생기면 재빠르게 반응할 수 있다 ‘런청페이’ 회장의 지분은 전체 주식의 1.4%뿐이다. 나머지 98.6%는 화웨이 노동자들 소유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화웨이가 사실상 중국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 번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했다. 중국은 짝퉁 천국이고, 지적재산권의 무법지대로 유명하다. 그러나 화웨이만큼은 다르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의 ‘2014년 특허 출원통계’ 자료에 따르면 화웨이는 3,442건의 특허를 출원해 세계 최다 특허 출원 기업에 올랐다. 화웨이 스마트폰이 다른 중국폰들과 달리 원활하게 해외 진출이 가능한 것도 많은 특허 보유 덕분이다. 리처드 유 화웨이 소비자사업부문 CEO는 화웨이가 더 나아가 스마트폰시장에서 차세대 기술을 선도하는 업체로 거듭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지용웅 대기자 goyow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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