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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리만큼 과감한 도전정신의 CEO 버진 그룹 리처드 브랜슨

기사승인 2018.12.10  10: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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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다면 왜 안 해? 괴짜 CEO 기상천외 ‘버진 제국’이루다

고교 중퇴 학력에 난독증,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도전정신, 재미와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뭐든 한다는 각오가 런던의 작은 음반가게를 40여 년 만에 항공, 통신, 호텔, 레저, 금융 등 400개 계열사를 거느린 굴지의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나체로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여승무원 복장으로 승객에게 음료수를 나눠주는 등 사업 홍보용 기행(奇行)으로도 유명하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야말로 창조경제의 아이콘이 아닐까.


괴짜 CEO의 탄생
교육열이 높았던 그의 부모는 아들을 학비가 비싼 사립학교에 보냈지만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괴짜 기질은 어린 시절부터 나타났다. 195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그는 열여섯 되던 해에 학생들을 상대로 한 잡지 <스튜던트>를 발행했다.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시작했지만 철저하게 준비한 덕에 존 레논, 장 폴 사르트르 등 유명인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가 하면, 메이저 신문사에서 취재비를 지원받아 베트남전을 현장에서 취재하기도 했다. 그는 ‘열여섯 살짜리가 분쟁 지역을 둘러본 소감을 세상이 궁금해하지 않겠느냐’며 신문사를 설득했다. 
잡지가 인기를 얻자 리처드 브랜슨은 학교를 그만두고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잡지 인기만큼 돈이 들어오지 않았다.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겨 사업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음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70년 당시 영국에 레코드 할인 판매업체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우편 주문을 받아 음반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한숨 돌릴 틈 없이 위기가 닥쳤다. 우체국 파업으로 우편 판매가 어려워진 것. 그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 옥스퍼드가 신발가게 한편에 음반 매장을 냈다. 단순히 음반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매장을 학생들이 편히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입소문 덕에 매장이 인기를 끌자 그는 한 단계 나아가 음반 제작에 나서 대박을 터뜨렸다. 이런 브랜슨을 누구보다 격려하고 지지해준 사람은 어머니 이브였다. 어머니는 “언제나 네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라”며 아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브랜슨이 사업 초기이던 1970년대 초 골치 아픈 법적 문제에 얽혀 자금난으로 고전할 때 가족 저택을 저당 잡혀 빌린 돈으로 아들의 벌금도 대신 내줬다. 어머니의 가르침은 지금껏 브랜슨의 경영철학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버진'이란 이름은 음반 매장을 준비하던 당시 구성원 중 하나가 "다들 사업이 처음이니 '버진'어때?'라고 제안한 데서 탄생했다. 버진은 현재 영국, 미국, 호주, 남아프리카 등 35개국에서 60여 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다 집어치우고 그냥 해(Screw it. Let's do it)”
비즈니스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성장하기 위해서는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고 흥미가 생긴다면 해야 한다. 다만 나를 위한 여지가 있는지, 내가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리처드 브랜슨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열기구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고 영국에서 아일랜드까지 가장 빠르게 횡단하는 선박에 수여하는 ‘블루 리밴드상’을 거머쥔 모험가이자, 콜라 자동차 모바일 항공 등 다양한 사업 분야에 뛰어든 사업가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그는 “일단 해보라”라고 조언한다.  
지난해 하이퍼루프 개발사 ‘하이퍼루프원’을 인수해 버진하이퍼루프원을 설립할 때도 그는 과감히 뛰어들었다. 버진의 임원이 하이퍼루프 기술을 가진 '하이퍼루프원'에 대해 설명했을 때, 리처드 브랜슨은 5분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한 뒤, 바로 투자를 결정했다. 하이퍼루프는 2013년 일론 머스크가 제안한 차세대 이동수단이다. 승객을 태운 캡슐 형태 열차가 약 1200km/h로 진공 상태에 가까운 터널을 지나가는 방식이다. 그가 무작정 뛰어든 것은 아니다. 하이퍼루프원의 모토가 자신이 사업을 하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빠른 의사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자신을 짜증 나게 하는 것들을 찾아 문제점을 해결하는 곳에서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늘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하이퍼루프의 조쉬 기겔(Josh Giegel)을 만났을 때, 조쉬는 “여행은 완전 별로인 것 같다(Travel sucks)”고 말했다. 항공사 3곳과 기차 사업 2개 그리고 3개의 우주관광 관련 회사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말이다. 조쉬는 이어 “별로인 여행을 별로가 아니게 만들어보자”라고 말했다. 리처드 브랜슨은 여기에 매료되었다. 버진하이퍼루프원은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소재 항만 운영 회사 DP월드와 합작해 화물 운송용 하이퍼루프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해 2021년까지 두바이~아부다비 구간에 하이퍼루프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할 예정이다. 
초창기부터 그는 한결같았다. 해당 분야에 불편함이 있다고 느낄 때 지체 없이 뛰어들었다. 1984년 버진의 첫 항공사 버진 애틀랜틱을 시작할 때도 제안서를 받고 일주일 만에 결단을 내렸고, 수개월 안에 첫 비행에 나섰다. 휴가 때 비행기가 취소돼 겪었던 일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리처드 브랜슨은 휴가차 버진아일랜드에 갔다 푸에르토리코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그는 비행기가 취소됐다는 사실을 들었다. 다른 승객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공항을 방황하기만 했다. 리처드 브랜슨은 그 자리에서 2000달러에 비행기 한 대를 빌리고, 칠판 하나를 가져와 “버진 항공사. 푸에르토리코행 편도 비행 39달러”라고 적었다. 사람들은 앞다퉈 표를 사 갔다. 버진항공은 사실상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직접 몸으로 광고한다”
기업의 회장이나 최고경영자가 직접 밖으로 나가 자신의 사업을 광고해야 한다. 리처드 브랜슨의 기행은 늘 화제가 됐다. 요청하지 않아도 언론에선 그의 모습을 1면에 실었다. 돈 안 들이고 광고를 제대로 한 셈이다. 버진 애틀랜틱을 시작할 때 세운 ‘직접 몸으로 광고한다’라는 원 칙을 여태껏 지켜오고 있다. 막 출발선에 선 신생 항공사는 홍보에 돈을 쓸 여력이 없었다. 혼자 서기도 힘든데 브리티시 항공이라는 거대 항공사의 공세까지 이어졌다. 그의 멘토인 프레디 레이커는 그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직접 밖으로 나가 버진을 알려야 하네. 그리고 반드시 신문 1면을 장식해야 한다.” 그는 대중 앞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버진 모바일을 홍보하기 위해 홀딱 벗고(정확히는 살색 옷을 착용) 뮤지컬 <풀 몬티> 출연진과 함께 뉴욕 타임스퀘어 상공에 등장하기도 했다. 중요 부위만 휴대전화로 가린 채였다. 버진 모바일 서비스에 숨은 비용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같은 아이디어를 냈다. 그해 ‘월스트리트저널’로부터 최악의 광고상을 받긴 했지만, 엄청난 광고효과를 누렸다. 그 외에도 버진 콜라 출시와 함께 탱크를 몰고 시내 한복판에서 코카콜라 간판에 물대포를 쏘는가 하면, 웨딩 서비스 업체 버진 브라이드 홍보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기까지 했다.  

도전은 계속된다
회사 이름을 ‘최초’라는 뜻이 담긴 ‘버진’으로 짓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직원들에게 ‘한계란 없다’고 강조하며, 놀라운 비즈니스 감각으로 성공 신화를 일군 그의 드라마 같은 삶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창의성이 넘치는 경영자로 일컫는다. 그는 아직도 ‘세계적 대기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즐거운 일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세계적 대기업을 만들었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바다와 하늘에서의 모험을 마친 리처드 브랜슨은 향후 몇 년 안에 우주로의 모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2004년 설립된 버진 갤럭틱은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우주비행선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이미 브래드 피트를 포함한 700여 명이 25만 달러짜리 우주여행 티켓을 구매했다.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이 가장 먼저 비행에 나서겠다고 그간 밝혀왔다. 즐거움과 더 큰 성공을 위해 버진의 새로운 사업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리처드 브랜슨은 자신의 사업 목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를 만들어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 가장 클 필요는 없다. 사람들은 내게 인생의 어느 순간에 성공했음을 느끼냐고 묻고 하는데, 내 대답은 ‘앞으로 더 큰 성공을 맛보고 싶다’이다.”         
 

편집국 sisanewsn@sisanews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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